🔫 진실은 저격당했다: 군 의문사 1호, ‘허원근 일병 사건’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본 글은 1984년 발생한 ‘허원근 일병 사건’을 바탕으로, 군 의문사 조사 과정에서의 국가기관 간 갈등과 타살 의혹을 집중 조명하는 탐사 추리 기사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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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984년 4월 2일, 막사 뒤편의 비극

1984년 4월 2일 오후, 강원도 양구 육군 백두산 부대 막사 뒤편에서 이 부대 소속이었던 허원근 일병(당시 20세)이 총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옆에는 K2 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고, 사건은 곧바로 **’사고 혹은 자살’**로 처리되었다. 군 당국은 허 일병이 심한 군 생활 염증으로 인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발표하며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소 밝고 활발했으며, 휴가 직전이었던 아들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총상이 자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위치와 형태를 띠고 있음을 발견했고, 군 당국이 무언가를 은폐하려 한다는 강한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허 일병의 죽음은 이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군 의문사 논쟁의 가장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군 의문사 1호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2부. ‘세 발의 총성’이 낳은 법의학적 미스터리

이 사건의 핵심 미스터리는 바로 **’총상의 개수와 위치’**에 있었다.

군 당국은 허 일병이 자신의 소총으로 스스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과 민간 법의학팀의 조사 결과, 허 일병의 시신에서는 세 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1. 관통상 1: 오른쪽 옆구리에서 복부를 관통한 총상 (치명상)
2. 관통상 2: 왼쪽 가슴을 관통한 총상
3. 관통상 3: 왼쪽 귀에서 턱 부분을 관통한 총상

자살을 위해서는 이 세 발의 총상이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발사되었어야 한다.

민간 법의학자들은 **”단 한 발의 총상만으로도 치명적인데, 세 발을 연속으로 스스로 발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총상을 입은 부위가 복부, 가슴, 머리 등 중요한 생명 유지 기관에 집중되어 있어, 첫 번째 총상을 입은 후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총탄의 종류와 방향, 그리고 소총의 위치와 당시 허 일병의 키를 고려했을 때,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세 곳에 총상을 입힌다는 것은 ‘역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이는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3부. 엇갈린 진실: 국가기관 간의 충돌

유족의 끈질긴 재조사 요구와 언론의 관심 속에, 허원근 일병 사건은 2000년대 들어 국가기관들이 직접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1.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타살 결론): 2005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재조사한 후, **”자살로 볼 수 없다. 타살의 개연성이 높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군 당국이 자체적으로 과거의 오판을 인정한 셈이었다.
2.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타살 결론):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역시 **”총상의 위치와 개수로 미루어 타살이 확실하며, 군 당국의 자살 결론은 조작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군 당국과 검찰은 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군 검찰은 재조사 결과에서도 ‘자살’ 결론을 고수하며, 두 국가 조사위원회의 ‘타살’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결국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했고, 법정은 다음과 같이 엇갈렸다.

• 1심/2심 법원: “총상 개수 및 위치, 그리고 군 내부 은폐 정황을 볼 때 타살로 판단한다.” (유족 승소)
• 대법원: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자살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타살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파기환송, 최종적으로 유족 패소)

4부. 진실은 누구에게 저격당했는가?

‘허원근 일병 사건’은 총상의 개수, 총탄의 방향, 현장 조작 정황 등 수많은 타살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와 군 당국의 보수적인 판단으로 인해 결국 미해결 타살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질문은 매우 깊다.

• 진실의 은폐: 1980년대 군 내부에서 누가, 왜, 허 일병을 살해했으며, 군 당국은 왜 그토록 이 사건을 **’자살’**로 덮으려 했는가? (군 내부 부조리, 혹은 특정 인물 간의 갈등 가능성)
• 과학적 증거의 무력화: 세 발의 총상이라는 명백한 법의학적 타살 증거가 왜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능성’**으로 축소되었는가?

진실을 밝히려 했던 두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조차 군 당국과 사법 시스템의 벽을 넘지 못했다. 허원근 일병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권력에 의해 진실이 저격당하고 은폐된 대한민국 군 의문사의 슬프고도 영원한 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