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을 흔든 그림자: ‘백양산 연쇄살인’, 동일범의 흔적은 무엇인가?

[본 글은 1975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당시 언론에선 ‘백양산 연쇄살인’으로 지칭되기도 했으나, 실제 범행 지역은 다수)을 바탕으로 범행 수법의 유사성과 수사 당국의 오판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추리물 형식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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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975년 여름, 공원에서 시작된 악몽

1975년 8월, 한반도는 여름의 열기로 들끓었지만, 부산 시민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은 더위가 아닌 공포였다. 그 공포의 시작은 8월 21일 새벽, 부산 대신공원(당시 용두산 공원) 수풀 속에서 발견된 7세 여아 김현정(가명) 양의 시신이었다.

현장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는 옷이 모두 벗겨지고 팬티만 걸친 채 발견되었는데, 손발은 끈으로 묶여 있었고, 입 안에는 신문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 누군가 아이의 목을 끈으로 졸라 살해한 명백한 타살이었다.

경찰의 초동 수사는 이때부터 삐걱거렸다. 현장을 둘러본 경찰 일부는 **”외상이 없어 타살로 보기 어렵다”**는 어이없는 보고를 상부에 올렸다. 희생자가 어린 여아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초기부터 원한 관계나 치정 관계 등 성인 범죄에나 해당할 만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결정적인 단서를 놓쳤다. 이마와 오른쪽 귀 밑의 심한 타박상 등 범행의 폭력적인 흔적은 간과되었다.

2부. 나흘 뒤의 데자뷔: 동일범의 ‘시그니처’

김현정 양 사건으로 부산이 공포에 휩싸인 지 불과 나흘 뒤, 또다시 비극이 발생했다. 8월 24일 저녁, 동구 좌천동에 살던 5세 남아 배준일(가명) 군이 실종되었다.

다음 날 아침, 실종 장소에서 멀지 않은 야산(당시 백양산 자락 인근으로 추정)에서 배 군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경찰은 현장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범행 수법이 김현정 양 사건과 소름 끼칠 정도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배 군 역시 속옷만 입은 채 발견되었고, 손과 발이 묶여 있었으며, 입안은 신문지나 헝겋 조각으로 채워져 있었다. 두 아이 모두 목이 졸려 사망한 경부 압박 질식사였다. 두 사건의 장소는 달랐지만, ‘아이의 옷을 벗기고, 손발을 결박하며, 입에 무언가를 채워 질식시키는’ 행위는 명백한 동일범의 범행 시그니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찰은 뒤늦게 두 사건을 동일범의 연쇄살인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다. 현상금까지 걸고 공개 수사를 진행했지만,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3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몽타주와 연관성

수사는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 택시 기사가 김현정 양 실종 직후 아이와 비슷한 연령의 소녀를 태우고 도주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을 토대로 경찰은 몽타주를 만들어 무려 10만 장을 배포했다.

하지만 이 몽타주는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혼란은 **’유사 사건’**이었다. 이후 부산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유사 범죄가 연달아 발생했고, 경찰은 그때마다 용의자를 체포하며 ‘백양산 연쇄살인’의 범인인지 확인했지만, 매번 **’별개의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특히 1978년에 발생한 ‘이영주 양 살인사건’의 범인 박홍근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범행을 했다”고 자백하며 충격을 주었지만, 이 역시 김현정/배준일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연쇄 범죄의 공포는 모방 범죄를 낳았고, 이는 진범을 잡아야 할 수사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특별 수사 본부는 73일 만에 해체되었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 두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로 남았다.

4부. 잔혹한 시그니처가 남긴 질문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은 한국 미제 사건사(史)에 **’범행 수법의 극단적인 유사성’**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초기 오판과 혼란스러운 수사로 인해 진범을 놓친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묻는다.

1. 범인의 심리: 옷을 벗기고,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결박하는 잔혹한 **’시그니처’**는 범인의 어떤 변태적 욕구나 피해자에 대한 지배 욕구를 반영하는가? 이 잔혹한 수법이 당시에 잡힌 다른 아동 살해범들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가?
2. 놓쳐버린 시간: 최초 범행 4일 만에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 범인의 급박한 심리를 왜 초기에 파악하지 못했는가? 만약 첫 번째 사건에서 타살을 명확히 규정하고 수사를 시작했다면 두 번째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부산을 흔들었던 그림자, ‘백양산 연쇄살인’의 진범은 지금도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범인이 남긴 시그니처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을 향한 끈을 놓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