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제 사건의 시간: 9년 5개월, 태완이 사건의 ‘법의학적 재조명’

[본 콘텐츠는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 일명 ‘개구리 소년 사건’을 재구성한 소설 형식의 탐사 보도입니다.]

---

1부. 사라진 봄의 조각들 (1991. 3. 26.)

1991년 3월 26일, 대구 성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 선거일, 학교에 가지 않는 달콤한 휴일. 와룡산(臥龍山) 아래 평범한 동네에 살던 다섯 소년, 우철원, 조호연, 김영규, 박찬인, 김종식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산으로 향했다. ‘개구리 소년’이라는 별명은 그들이 잡으려 했던 ‘도롱뇽’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붙은, 슬프고도 아이러니한 이름이었다.

소년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날의 와룡산은 봄의 기운이 완연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나무 사이로 부서지며 울려 퍼졌다. 하지만 해가 서산에 기울어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들이 놀다 보면 늦을 수도 있지.” 그러나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부모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경찰의 초동 수사는 처참했다. 성인이 아닌 초등학생 실종 사건에 대한 당시 사회의 낮은 인식은, 이 사건을 단순한 **’집단 가출’**로 규정짓는 치명적인 오판을 낳았다. 부모들은 눈물로 호소했지만, 수사는 오락실과 만화방을 배회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찰은 아이들이 특이할 정도로 평범한 가정환경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다섯 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특이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미제’**라는 짙은 안개 속으로 흘러갔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전국을 헤매며 낯선 이의 발에 입을 맞추고, 터무니없는 제보에 전 재산을 탕진했다. 온갖 괴담과 헛소문이 마을을 맴돌았고, 심지어 아이들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살해 후 암매장했다는 ‘범죄심리학 교수’의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하여 그들의 집 마당을 파헤치는 만행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실은 빈약한 수사력과 위험한 상상력 사이에 파묻혀 갔다.

2부. 뼈에 새겨진 증언: 법의학적 재조명 (2002. 9.)

시간은 무심히 11년 6개월을 흘려보냈다. 2002년 9월, 실종 지점 근처인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날의 발견은 단순한 백골 발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사 당국의 무능과 오판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의 실체였다.

발견된 유골들은 옷가지와 함께 뒤섞여 있었고, 아이들이 매고 있던 가방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핵심은 바로 이 ‘뼈’와 ‘옷’에 있었다.

당시 경찰은 유골이 발견된 장소가 습지이고 주변에 급경사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저체온사’ 혹은 ‘길 잃은 아이들의 껴안고 동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았던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의 6주간에 걸친 정밀 조사는 이 주장을 산산조각 냈다.

“아이들은 타살되었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후 유기된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팀이 주목한 것은 두개골 손상 흔적이었다. 유골 중 세 명의 두개골에서 예리하거나 둔탁한 도구에 의해 생긴 명확한 손상 흔적이 발견되었다. 특히 김영규 군의 두개골에서는 날카로운 물체로 인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손상이 확인되었고, 우철원 군의 두개골은 강한 충격으로 인해 골절된 상태였다. 이는 단순한 사고사나 자연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위적인 폭력의 증거였다.

게다가 유골과 함께 발견된 옷가지들의 상태 역시 타살의 강력한 증거였다. 한 아이의 옷은 소매로 목 부분이 묶여 있었고, 유골 중 하나의 머리 부분에는 윗도리가 뒤집어쓰여 있었다. 만약 아이들이 길을 잃고 동사했다면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옷을 벗겨 묶거나 뒤집어 씌울 이유가 없었다. 이는 범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거나 유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3부. 공소시효 너머의 진실

법의학적 증거는 타살을 지목했지만, 공소시효는 멈추지 않았다. 2006년 3월 25일, 이 사건은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미제 사건의 기록 속에 잠들었다. 피해자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15년간의 고통은 법의 시효 속에서 잊혔다.

하지만 진실을 향한 추적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 사건은 언제든 진범이 나타나면 처벌할 수 있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최초의 오판, ‘집단 가출설’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부모들의 간절한 호소는 왜 묵살되었고, 수사는 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는가? 둘째, 법의학팀이 발견한 ‘타살’ 증거와 범행 도구의 실마리는 왜 끝내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는가? 특히 아이들의 유골 근처에서 발견된 탄피와 관련하여 당시 군 사격장과의 연관성은 왜 명확하게 파헤쳐지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유골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침묵하지 않는 진실을 외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미제 사건이 아니라, 국가 수사 시스템의 부재와 공권력의 무관심이 빚어낸 살아있는 상처다. 공소시효는 끝났을지언정, 범인의 죄와 사회의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누가, 왜, 다섯 아이의 봄을 앗아갔는가?